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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nlymarch

한국근현대건축
부산지역 근대건축물 조사발표 프리젠테이션
2007년 9월 27일에 발표되었습니다.

내용
부산/울산 지역 근대건축물

남선창고
백제병원
임시수도기념관
상북면사무소
한전부산지점
좌천역
정란각
송정역
청풍장/소화장
부산대학교인문관

Posted by Onlymarch

(이 게시물은 Word2007에서 게시되었습니다)

한/중/일 민가건축

   

1. 동아시아 민가건축의 특징

거대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인간은 살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가장 가까이서 보호하는 의복을 만들어 몸을 보호함과 동시에 수치심으로부터 보호하였고, 먹을 것을 찾아 생명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 또는 공동체가 기거할 수 있는 집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놓고 볼 때, 건축은 인류 문명의 한 꼭지점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시기의 필요에 따라 단순 수혈주거에서 초가집, 기와집을 거쳐 타워팰리스까지 발전해온 주거건축은 인간과 가장 가까이 한 건축물이며 건축행위일 것이다.

성 베드로성당과 북경의 자금성이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며, 고대로마인이 가도를 설치하던 시기에 중국인은 만리장성을 놓았다. 수백년간의 누적된 지역적인 특성은 이처럼 큰 차이를 보여주게 된다. 이런 서로다른 건축에 대하여 서로의 우열을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인 역사의 기록이 지배계층의 활동과 승리자의 업적에 맞추어 있는 것처럼 건축의 기록또한, 개인의 생활수단에 불과한 주거건축 보다는 교회, 사묘, 궁궐건축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일반 민초의 생활터전인 민가건축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은 좀더 구체적이면서 실질적인 건축공부가 될 것이다.

민가건축 형식의 변화는 그 시대의 사회변화(인구의 증/감 등)를 반영한다. 도시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면 건축물의 밀도는 상승하게 되고, 반대이면 밀도는 감소하게 된다. 또한 그 지역의 환경적인 특성이 여실히 반영된다. 일사량, 습도와 온도같은 피부에 직접 닿는 여건은 건축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석재보다 목재가 풍부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반적인 건축물은 목재로 이루어 졌으며, 극히 일부건축물 만이 석재를 이용하여 건축되었다. 또한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서 아예 땅 속으로 들어간 형태를 보이는 곳도 있다.

   

2. 한국의 민가건축

1) 한국건축의 일반적인 특징

한국의 건축문화는 한민족에 의하여 한반도에서 성립된 건축문화이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인근국가와 다른 배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오랜세월의 정치제도, 사회제도 및 한국인들이 가진 독특한 의식과 사상에 기인한다.

한국은 전 국토의 70%가 산지인 지형이다. 이러한 지형적 조건은 자연스레 건축물이 앉게 될 터를 선정하고 배치하는데에 큰 영향을 주게 되며, 이것이 한국 건축의 주요한 특징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땅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나, 본격적인 건축행위가 시작된 것은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약 6000여년경 전쯤의 움집으로 본다. 하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움집터에서 각 움집들 사이에 특별한 배치관계는 보이지 않으므로, 이 시기까지도 특별한 건축배치형식이 나타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배치에 어떤 규칙이 나타난 시기는 삼국시대 이후로 판단한다.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 집단노동력의 필요와 곡물의 보존 등 여러 이유에서 저장고를 만들게 되고, 기능적인 공간의 분화가 나타났다. 또한, 공동의 노동력과 수확물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체계가 갖추어 지면서 마을 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일정한 배치의 틀이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건축 중에서 민가가 남아있는 것은 조선이후의 건물이다. 그 이전의 것은 단지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조선의 주택평면은 비좌우대칭균형을 나타낸다. 건물의 입면을 좌우하게 되는 창호를 보면, 일반적으로 서양에서는 내부의 이용과 관계없이 일정한 크기에 일정한 배열의 창호를 설치하게 되는데, 한국의 전통주택에서는 내부 공간에 따라 창호의 크기를 정함으로서 크고 작은 창호들이 비좌우대칭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상에 입각한 것이며, 나아가 자연환경에 조화되는 극히 자연스러운 건축행위의 결과인 것이다.

한국건축은 각각의 건축공간이 채와 채로서 따로따로 건축되고, 각 채 안에서 여러개의 간으로 분화되는 특성을 가진다. 이렇게 채와 간의 분화로 이루어지는 공간은 적극적공간과 소극적공간의 교차반복을 이루게 된다.

한국의 건축공간은 개방성과 폐쇄성이 공존하며, 척도의 사용에 있어 지극히 인간적인 면이 보인다. 특히 좌식생활이 주종을 이룬 한국건축에서는 기둥의 높이, 들보의 크기, 천장의 높이 등 모든 척도가 인간의 키에 비례하여 대단히 크지도 왜소하지도 않다.

한국의 건축은 나타나는 무늬가 동일하고, 건축에 나타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손쉽게 변화와 통일성을 이룬다. 즉, 완자무늬는 창호의 살 짜임새의 무늬로, 또 실내에 비치되는 가구의 장식무늬로, 옥외의 난간 궁창부의 장식무늬와 굴뚝과 담장의 장식무늬로 반복적으로 나타나기에 동일주제의 반복으로 통일성을 이루며, 나타나는 장소를 달리 함으로 변화를 이루고 있다.

2) 조선 주택건축 형성의 배경

조선은 절대왕권을 전제로 한 전제군주국가였던 만큼 이에 부응하는 엄격한 신분제도가 확립되어 사회적 지위는 물론 주택에 있어서도 신분의 제약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의 민가는 양반의 주택인 상류주택, 중인계급의 중류주택, 양인의 서민주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품 계

부 수

현 행 평 수

대군, 공주

30

1170

왕자군, 옹주

25

975

일, 이품

15

585

삼, 사품

10

390

오, 육품

8

312

칠품이하

4

156

서인

2

78

조선은 개국과 더불어 유교를 정교의 최고원리로 숭봉한 결과 국민정신의 이상이 되고 조선숭배가 민간신앙의 핵심이 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사회의 기본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가족으로, 대가족제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족제도는 하나의 주택속에서 여러 대가 모여 살게 되었고, 특히 큰 집안에서는 3대, 혹은 4대에 이르는 여러 식구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따라서 주택건축은 큰사랑, 작은사랑, 안채, 아래채, 별당 등 여러채의 건물들이 지어져 하나의 커다란 주택을 이루게 되었다.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은 남존여비 사상과 엄격한 남녀구별양식을 가져와, 내외법에 의한 공간분화가 이루어졌다. 즉 안채와 사랑채의 구별, 안방과 사랑방의 구별, 내측과 외측의 구별 등 같은 주택 안에서도 남녀의 공간을 따로 마련하였다. 또 남존여비사상은 여성들이 드나드는 대문은 평대문이고, 남성들이 드나드는 대문은 솟을대문으로 건축물의 격식을 달리하게 되었다.

3) 배치/평면/구조

조선시대 주택의 배치와 평면은 첫째로 기후와 풍속적인 요인으로 각 지방마다 서로다른 배치와 평면을 구성하며, 둘째로 신분제도에 의하여 상류/중류/서민주택의 세 분류로 각기 독특한 배치와 평면을 이루고 있다. 이들 주택중에서 서민계습의 주택이 가장 뚜렷한 지방색을 갖게 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지방유형분류는 서민주택을 기본으로 한다. 또 서민주택의 평면유형을 달리하게 되는 평면적인 요소는 부엌과 안방 그리고 대청의 세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기인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민의 주택은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이나, 토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중이나 통나무기둥을 세워 납도리와 보를 걸거나, 또는 통나무 도리나 보를 걸어 지붕틀을 형성한다. 가구는 삼량, 사량가구가 일반적이고, 처마는 홑처마, 지붕은 맞배기와지붕 또는 우진각 초가지붕을 이룬다.

한양도성내의 상류주택은 일반적으로 장대석 두, 세벌의 기단위에 네모뿔대의 다듬은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납도리와 보로 결구하여 지붕틀을 구성한다. 가구는 오량가구가 일반적이고 처마는 홑처마 또는 겹처마를 이룬다. 안채와 사랑채가 독립되어 건립될 때에는 팔작지붕이 주류를 이루고, 한지붕으로 연속되어 건립될 때에는 안채의 양측 용마루 끝단에 합각을 이루어 팔작지붕의 모양을 이룬다.

   

3. 중국의 민가건축

1) 중국건축의 일반적인 특징

중국의 문자는 중국문화의 성장에 따라, 적어도 300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 문자가 상형문자라는 점이다. 건물은 구체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문자를 창제할 때 건축의 정황을 글자체의 외형과 내용에 담아서 기록하였다. 원시문자중에 건축물을 대표하는 글자가 3개 있느데, 오늘날의 문자로 치면 실(室), 택(宅), 궁(宮)이 바로 그것이다. 이 3개의 갑골문의 글자형을 보면 건물의 평면, 입면, 단면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첫째, 갑골문이 사용되던 은, 상시대는 기단과 모입지붕이 건물의 표준형식이었다. 둘째, 그 당시의 건물은 가구식 목구조였다. 셋째, 하나의 공간을 둘러싸며 건축군을 배치하는 것이 이미 일반적인 방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북경 사합원

중국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합원은 일반 하급계층들이 보통 지을 수 있는 집이 아니며, 비교적 경제젖그올 안정된 상층계급들만이 지을수 있는 주거건물로서 중국의 주거문화 자체를 대표하는 주거형식으로 중국 주거건축의 기본적인 원리를 내포하고 있는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합원은 중국 상류사회 주거건축의 대표적 유형이라 할 수 있으며, 오늘날까지 북경을 비롯하여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그 공간구성이 매우 정형화 되어 있어 특이하다.

또한 중국의 자연환경은 모래와 먼지가 많은관계로 인하여 외부와의 단절된 형상의 건물배치가 유리하다. 따라서 외부로는 폐쇄적인, 내부로는 개방적인 구성을 하고, 내부로는 채광과 통풍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중정이 반드시 존재하게 되며, 이는 주거건축 뿐만 아니라 모든 중국건축의 특징이 된다.

사합원은 건물이 대칭을 이루면서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중정을 형성하는데, 이는 평면적으로 대칭을 이루지 않으면 면적이 최대인 중정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에 중정을 중심으로 건물을 배치한 사합원이 생겨나게 되었다.

사합원의 내원은 내향적 성격의 외부공간이지만, 실질적이며 상징적인 중심공간으로서 사합원의 핵심공간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을 서로 연결하면서 중정을 둘러싸고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연계하는 역할을 하는 회랑은 사합원을 하나의 유기체로 만드는 기능을 가진다. 평면유형의 기본원칙은 ㅁ자에 ㄷ자의 평면이 부가되어 확장되기도 하고, 횡방향으로 연이은 두 개의 주택이 통합되어 확장되기도 한다.

3) 주요지역별 민가 : 요동

춘추전국시대부터 수, 당대까지 중원일대는 전란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백성들은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는 요동을 파서 은거하였는데, 특히 수나라의 30만 병력이 주둔했을 때 정주, 낙양 등지의 주민들이 근교의 요동에서 난을 피하였고, 여러 위기사태시에 황토고원에는 피난민의 요동이 급증하였다.

한편, 송대에는 요동이 단순한 백성의 주거로 한정되지 않고 부유층의 주거로 각광을 받아 대규모의 요동들이 건축되었다. 즉, 요동의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점이 부각되어 부호들가지 낙양 근교에 요동과 대규모 정원을 건설하여 피서지로 이용하였다. 특히, 명, 청대에 오면서 벽돌을 이용한 외벽마감기술이 발달함으로서 요동이 단순한 피난처가 아닌 영구적인 주택으로 이용되게 되었다.

요동은 터 잡기, 터 다듬기, 굴파기, 굴 내외부의 마감처리 등 여러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많은 노력이 투입되는 것은 굴파기 작업이지만 채광과 통풍이 잘되는 방향의 터를 잡아야만 굴파기 작업이 수월하고 요동의 붕괴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굴파기가 끝난 후 요동 내부의 습기를 제거하고 벽을 바르는 작업과 벽면의 침식을 방지하기 위한 작업 역시 요동 주거를 장기간 보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요동 작업은 설계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그 요동에 거주할 농민 자신들이 담당한다. 요동을 짓는 사람들이 비록 건축의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자연에 대한 지식, 근면성, 건축물을 창조하는 지혜등을 고르게 갖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굴의 굴착에 앞서 집터의 선정에서부터 토양의 성분과 수분함량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굴의 붕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과학적인 공법을 구사하며, 실내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기 위한 마감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또한 1가구당 3개 공 이상의 요로 이루어진 넓은 거주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점이라 할 수 있다.

4) 주요지역별 민가 : 토루

토루는 먼저 외벽을 두른 후 점차 내부를 단위주거로 분할하여 구성된다. 이들 토루는 전체적인 형태는 물론 단위주거의 구성방식이 매우 기하학적이다. 문청과 조당을 잇는 주축선을 중심으로 전체 형태와 공간이 대칭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천정의 공동건물은 주축선을 중심으로 대칭으로 구성됨으로서 이러한 특성이 강조된다. 단위주거의 각 층에는 통산 폭 1~2m정도의 주마랑이 있다. 주마랑은 대개 보를 빼어 캔틸레버 형태로 돌출시켜 지층의 회랑에 기둥이 없도록 구성된다.

토루에서 공동생활은 주로 대천정 및 그안에 구성된 공동건물에서 수용된다. 이러한 공통공간을 구성하는 중심요소는 조당이다. 조당은 토우 본 건물 안의 한 개간을 차지하거나, 천정을 갖추고 대천정의 중앙에 배치된다. 조당은 그것이 면하는 대천정 또는 천정에 어떠한 칸막이벽 없이 직접 연계된다.

단위주거의 입구는 모두 대천정에 면하여 위시되므로, 대천정은 모든 단위주거로부터 원활하게 접근된다. 조당 또는 그것을 중심으로 한 공동건물은 각 단위주거에서 시선과 동선이 균등하게 접근될 수 있는 지점에 자리잡는다. 이처럼 단위주거로부터 조당이나 공동건물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확인되고 접근되도록 함으로써 조당 또는 공동건물은 토루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물리적 조건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4. 일본의 민가건축

1) 일본건축의 일반적인 특징

춘하추동에 따라 변화하는 사계절의 경치는 일본 민족의 마음을 강하게 자연으로 이끌리게 하였다. 기후 변화는 인간의 생활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들과 산의 경치는 자연 그대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데 충분하였다. 일본인의 생활은 이 장연속에 안겨 있어서 자연과 밀접한 관계로 영위되어 왔다. 건축, 특히 주택은 인간이 만든 것으로 자연의 일부를 잘라 내어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방적이며 겨우 비바람을 피하고 견디는데 지나지 않았다. 서구, 혹은 중국의 주택이 자연공간속에 별개의 인간의 생활공간을 만들고, 벽에 의해 자연과 경계를 만드는 것과는 다르게 자연공간 속에서 생활하도록 하였다. 물론 이것은 '여름을 맞추어 할지어다'라는 여름의 찌는 더위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일본인의 자연관을 무시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일본인의 자연관을 나타내는 좋은 예는 정원이다. 일본 정원은 유럽에서와 같이 인공적인 기하학적 배치를 전혀 갖지 않으며, 자연풍경의 재현으로 자연경관을 빌어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가는 흙바닥식 주택은 정원과의 관련을 갖기 쉬울 것이며,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마루바닥의 일본 주택은 그것만으로 집의 안팎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일본주택에는 집주위와 집과 정원 사이에 툇마루를 둔다. 툇마루는 방 안에서 보면 실외이고 정원에서 보면 건축물의 일부가 되어 정원과 실내를 잇는 역할을 한다.

2) 침전조 건축

침전이라고 불리는 중심적인 건물이 남쪽의 뜰에 접하며 동/서로 부속건물을 배치하고 각 건물은 복도로 이어진다. 침전의 앞쪽에는 넓은 정원과 연못이 위치하며, 연못의 주위에는 언덕을 쌓고 수목을 심어 두었다. 헤이안 시대 당시의 옛날 건축이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림이나 귀족의 일기등의 기록에서 당시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침전은 본채가 3~5칸, 4면에 차양을 붙이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회피지붕의 마루바닥으로서 차양 밖에는 산자 툇마루를 두르고 난간을 설치하며 남면에는 계단을 둔다. 동/서에 측창을 두는 것 외에는 격자 살창을 달고, 안에 발을 내려 장막을 세운다. 침전 내부는 수납으로 사용되는 벽장의 작은 방 외에 고정 칸막이는 적고 문, 병풍, 발을 이용한 다다미나 자리를 깔고 앉는다.

동/서의 대옥도 그 구성은 침전과 같은나, 침전의 건물이 동서로 긴 평면인데 반해, 동/서의 대옥은 남북으로 길다란 맞배지붕이고, 본채의 4면에 차양을 두르고 전면입구 1칸은 차양 없이 하고, 그곳은 바닥을 한 단 낮추어 각 기둥을 쓰며 박공에서 내린 차양지붕을 덮어준다.

3) 서원조 건축

서원조 주택의 택지규모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내부상태와 교토의 도시계획을 고려해 볼 때 사방 1정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서원조 주택의 가장 큰 특징으로, 주택의 평면구성이 접객공간, 가족의 생활공간, 하인의 생활공간 등 셋으로 나누어 앞의 두 공간을 하인의 생활공간에서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택지의 주위로는 벽이 둘러쳐져 있으며 사방에 문을 두고, 동쪽을 정면으로 한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근세화풍 주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평면의 융통성 : 다다미를 전면에 깔고 가구는 거의 두지 않는다. 따라서, 사용하는 가구에 따라 응접실, 거실, 다실, 서재 등 무엇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그 융통성은 단지 실용성 뿐만 아니라 바닥의 축을 바꾸고, 꽃을 바꿈으로써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 특징은 서민주택의 크기를 극도로 작은 단계에 이르게 하는 원인도 되었다.

정원과의 관계 : 방은 벽에 의해 구획되는 격리된 공간이 아니고, 창호를 떼어내면 주위는 오나전히 개방되는 공간이 도니다. 그것은 습기가 많은 일본의 기후에 적합하고, 동시에 일본인의 자연에 대한 사고방법 중 하나를 표출하는 것이다. 정원은 창이라는 틀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거실, 툇마루, 정원과 아무런 구별도 없이 하나로 되어 있다.

재료미 : 자연 그대로의 재료는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k 일본인만큼 목재결의 아름다움을 알고 이것을 사랑하는 민족은 별로 없다.

실용미 : 실용을 지향하는 가구는 간단하지만 세련된 미를 가지며, 방은 특별한 장식을 시설하지 않고 구조재는 그 합목적성을 가진 그대로 의장재로 취급된다.

소박 청순한 취미 : 먼지 한점없이 청소하여 정결하게 한 벽감에 한폭의 그림을 걸고, 꽃을 둔다. 실내 의장의 중심은 벽감에 집중하고, 그 외에는 전혀 장식을 갖지 않는다. 재료는 자연 그대로의 무늬로 모두 검소한 색조를 보이며 산뜻한 청색 다다미에는 장지를 통해서 희고 부드러운 광선이 투입되고, 간소하고 침착한 느낌을 나타낸다.

규격의 존재 : 다다미에 의해서 방의 크기가 결정되며, 인방의 높이가 일정해서 창호의 크기가 통일되어 있다. 근대 주택의 특색인 규격의 존재가 이미 보인다.

Posted by Onlymarch

주제 :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산과 인간들의 이름이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것 조사.

-       이름과 뜻, 그것이 소비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이미지

-       그림, , 참고문헌 표기

이 과제는 2007년 4월 6일 제출되었습니다.

Posted by Onlymarch
이 프리젠테이션은 2007년 3월 27일 실시되었습니다.
<내용>
명동지역의 기반시설 배치조사
개인제안
Posted by Onlymarch
이 프리젠테이션은 2007년 3월 20일에 실시되었습니다.
명동지역의 문화발전상을 조사하였습니다.

<내용>
문화의 구성
보는문화
소비문화
공연문화
축제문화
문화창조자
Posted by Onlymarch


건축시공 및 재료1

주제 : 건축시공의 최근경향




건설업은 건축물(현장)이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공정에 따라 공사요소가 공사현장으로 이동하여 이루어 진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고정된 생산설비의 이용보다 이동 가능한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할수 있다. 그런데 각 생산현장마다 일용직 노동력을 고용하여 생산과정을 마친 후에는 해산하므로 체계적인 생산조직의 관리가 쉽지 않다.

건설공사는 대규모 자본과 오랜시간이 필요하므로 일반적인 상품에 반하여 상품의 생산빈도가 매우 낮다. 만약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건설공사를 수주하지 못하게 되면 건설업체는 유휴자원에 대한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건설업체는 고정적인 자산(건설기계 등)을 제외한 부분의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로서 건설업체는 경상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임시직 및 일용직 근로자의 비중을 높이려 한다. 이런 건설업 임시 근로자의 88.5%는 현장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무 및 기타 활동에 참여하는 근로자는 11.5%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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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자료는.....
두둥..ㅋ

Posted by Only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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